6 킬로미터 정도 뛰고 있을 때 빗방울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져 눈 뜨기도 힘들어 뛰지 못할 정도였다. 집에서 막 나왔을 때는 비가 드문드문 내렸는데 낭패다 싶었다.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그늘막이 있다. 늘 달리는 코스이니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는 훤히 파악하고 있었다. 벌써 곳곳에 파여있는 물웅덩이를 첨벙첨벙 밟으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커다란 하얀 천막 아래에는 나처럼 비를 피해 들어온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30분 정도 달릴 준비를 한 후 집을 나선다. 집 앞 공원을 한 시간가량 뛰는데,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다. 같은 시간에 늘 공원에서 보는 몇몇 익숙한 얼굴들이 있다. 대개 나이 지긋한 부부가 함께 산책을 하거나, 나처럼 뛰는 사람들이다. ..

그대가 서쪽의 더운 나라에 있을 지금 나는 명동의 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대가 예고 없이 떠남을 알려왔을 때 나는 오래전에 예고된 유효 기간 종료를 떠올렸다 열 번의 예약에 대한 보상 쿠폰이 올해로 사라진다는 예고를 기억할 때 열 번에 걸쳐 더운 나라와 추운 나라의 호텔을 그대와 함께 찾았음이 새삼스러웠다 서울 한복판의 호텔 방은 비좁다 마치 그대와 함께 일본을 한창 쏘다니던 그때의 크기와 다르지 않다 셋이 함께 자야 했는데 도무지 트윈룸이 없었던 건 나카스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기 때문이란 걸 호텔 부근에 가서야 곳곳에서 울리는 음악을 듣고서 알았다 가방을 배게 삼아 바닥에서 잤지만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대를 편하게 재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사대문 안 번화가에 위치한 호텔이지만 여행 기분을 내고 싶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