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신부님이라는 호칭은 조금 그렇네요” “앗, 죄송합니다. 그럼 어떻게?” “선배는 어떨까요? 제가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내 무신경함에 화가 났다. 사제라고 불리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거라고 왜 생각 못했을까. 걱정과 달리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화가 나 있지도, 난처해 하지도 않은 얼굴. “그럼, 유석 선배님. 댁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한 안줏거리 좀 사갈까요?” “그래요. 맥주나 와인은 충분히 있어요” 함께 걷던 사람들이 와, 하고 작게 탄성했다. “하긴 신부님들은 술 드셔도 되잖아요?” “그럼요. 매일 드시는 분들도 꽤 있죠. 후후” 아까 낮에 간 미술 전시회에서 예전에 꽤 친하게 지내던 지인과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다섯 명의 무리와 함께였는데, 어쩌다 보니 자연스레 거기에 섞이게 됐다...
“야. 김정후, 너 담배 피우고 왔지!” 스터디룸에 들어오자마자 또 난리다. 한 손으로 코를 막는 시늉을 하는 그 애를 보고 후배가 웃었다. “언니. 냄새에 되게 민감하네요. 정후 오빠 이제 아저씨니까 좀 봐줘요” “그니까. 옛날에는 안 폈는데. 군대에서 아주 나쁜 것만 배워 왔다니까” 공기를 휘젓듯 손을 흔드는 모습이 얄밉다. 저 망할 년이랑 같은 조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복학한 첫 학기 전공 수업에서 몇 안 되는 아는 얼굴이었다. 동기 여자애들은 거의 졸업했거나 취업 준비 중이었고 난 개강 시점에 군대 기간을 맞췄지만 친한 녀석들은 아직 제대 전이었다. 모르는 동네로 전학 온 초등학생 같은 기분으로 얼떨떨하게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누가 어깨를 툭하고 쳤다. “김정후, 오랜만이다” “어? 너,..
있잖아. 어제 저녁에 네 생각이 났어. 정확히는 네 냄새가 바람에 실려 있었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여름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였어. 이맘때의 바람은 가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해. 이번은 너였지. 너의 등에 딱 붙은 채 네 허리를 꼭 안고 달리던 때 맡았던 냄새. 그리고 네 파란 바이크. 아무것도 안 해도 좋을 때였지. 무엇이든 하려면 다 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그게 그렇게 되니. 시간은 손에서 흘러내릴 듯 많으리라 생각할 때였잖아. 매미 소리에 눈이 떠지면 그저 천장만 바라보며 한동안 누워있던 여름 방학이었어. 스마트폰 같은 건 없었으니 왜 이걸 보고 있는지 모르면서도 손가락을 놀릴 일도 없었고. 오늘은 무얼 할까, 누굴 만날까, 침대 위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을 때 창밖에서 귀여운 소리가 났..
난기류 안내 방송에 눈이 떠졌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깊게 잠들지 못한다. 출장을 마친 뉴욕에서 인천까지의 긴 시간, 좌석은 좁고 담배도 피울 수 없다. 등이 꺼진 기내는 어두웠다. 세수하고 영화나 봐야겠다. 마침 통로 쪽 좌석이 비어 있길래 나는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치잇, 하는 소리와 함께 세면대 수전 사이로 물총에서 쏘는 것 같은 물줄기가 솟았다. 변기 물을 내리던 나는 당황했다. 내가 뭘 잘 못했나. 아직 세면대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경고음이라도 울리는 것 아닌가, 걱정하고 있을 때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잠결에 문을 잠그는 것도 잊은 모양이다. 사람이 안에 있음을 알아챈 백인 사내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조용히 문을 닫았다. 물난리 중인 상황은 개의치 않는 듯한 모양새였다. 나는..
스케치북은 이제 몇 장 남지 않았다. 고등어며 갈치 토막 같은 생선 그림이 이어지다가 그리다 만 것 같은, 몇 부분만 난폭하게 칠해진 페이지가 계속됐다. 무심코 넘기던 손이 멈춘 것은 사람의 얼굴이 나왔을 때였다. 지금까지와는 그림이 달랐다. 잘 그렸다고 할 순 없지만, 어린아이의 실력이 아니었다. 성인의 손길로 정성껏 그린 얼굴. 어느 젊은 남자의 모습이었다.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는 어머니의 필체로 ‘오영수’라고 쓰여 있었다. 그날 순영은 아침부터 머리가 맑았다. 아주 가끔씩 증상이 사라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긴 꿈을 꾸고 일어난 기분이었다. 과거의 기억은 다시 선명해지는 대신 병을 앓고 난 후의 일은 기름종이를 댄 밑그림처럼 희미하고 어렴풋했다. 순영이 이곳에 온 후 겪은 일도 그랬다. 몇 개의..
둘의 첫 식사는 칼국수였다. 겨울이었다. 오는 길에 따왔다며 내밀 과일이 없을 계절이었다. 영수가 순영의 책상을 찾지 못한 채 몇 주가 흐른 후, 종일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며 눈은 그쳤다. 순영 자리로 걸어오던 영수는 아무 말 없이 무언가를 놓고 지나갔다. 반듯한 정사각형 모양으로 네 번 접힌 종이였다. - 과일 값 주세요 또박또박한 글씨로 쓰인 문구를 보고 풉. 순영은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웃음소리를 숨기려 손으로 입을 가렸다. - 일곱 시에 백조 다방에 있겠습니다. 부담되시면 안 오셔도 됩니다. 순영은 대각선 뒤쪽의 영수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비어 있었다. 누가 볼까 싶어 종이를 얼른 서랍에 넣은 순영은 남은 비용 처리를 계속했다. 계산이 자꾸 틀렸다.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다. 어머니를 뵈러 요양원에 갈 때마다 편의점을 닫을 수 없었다. 낮 시간대 알바 공고를 올리고 처음 연락 온 사람을 바로 채용했다. 휴학 중인 대학생이었는데, 미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는 싹싹하고 눈치가 빨랐다. 처음에는 자리를 비우고 카운터를 맡기는 것이 불안했지만 몇 번 지나지 않아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점장님 복받으셨네요. 매장을 담당하는 본사 직원은 미성이 일하는 모습을 보더니 밖에서 함께 담배 피우던 중에 말했다. 요즘 여자 알바 중에 저만큼 하는 애들, 정말 드물고 귀하다고요. 어머니를 모신 요양원은 차로 한 시간가량 걸리는 곳에 있었다. 수도권 인근에 있는 요양원 중 가장 시설이 좋은 곳이었고, 그만큼 비용도 상당했다. 하지만 가족과 같이 살던 집을 팔고 난 후라 ..
아들이 태어나던 해 두 번째 영화의 투자가 결정됐다. 본격적인 상업 영화를 쓰겠다고 달려들었던 작품이었다. 시대극이라 세트를 만들어야 했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자신은 있었다. 아내는 해외 수출할 때 번역은 맡겨달라고, 하지만 무료는 아니라고 웃으며 말했다. 선호가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 개봉한 영화는 경성 시대라는 유행이 끝물이었음에도 손익 분기점을 넘겼다. 아내는 번역과 함께 모교에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다. 들쭉날쭉한 일정의 부부를 대신해 어머니가 아직 손을 타야 하는 선호를 돌봐 주셨다. 손자의 육아에 몰입하는 것이 아버지의 죽음을 잊는데 도움이 되었을까. “영화쟁이는 원래 그렇게 밖으로 돌아다닌다니” 어머니의 말대로 늘 귀가가 늦었고 대부분의 자리는 술과 함께였다. 유쾌한 술자리여도 과하면..
핸드폰이 울렸다. 저장된 번호였다. 열흘 정도 후에 연락드리겠다고 했었지. 당시는 빈소 마련이며 어디까지 연락해야 할지 등으로 정신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마지막까지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할 일인 걸요. 평온하게 가신 것도 다 어머님 복이셨죠” 어머니가 있던 방 정리가 끝났고, 물품 중 챙길 것을 고르러 한 번 다녀오라는 전화였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논이 양옆으로 늘어선 좁은 길을 지나는 한 시간 정도 거리.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성심 요양원이 있다. 삼일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조문객은 드문드문했다. 어머니 쪽은 연락할 친척이 없었고, 친가도 아버지가 죽은 이후로 왕래가 뜸한 지 오래였다. 그러게 반대하는 결혼은 왜 했대. 이렇게 갈 것을. 아버지 빈소에서 처음 보는 노인들이 늘..
“덥지 않으세요? 여름이라 긴 머리가 불편하실 텐데”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을 때, 함께 랠리를 한 여자가 옆에 앉으며 음료수를 내게 건넸다. “고마워요, 수아 씨. 이제 두 달 정도 됐죠? 어때요, 할 만해요?” “아직 잘 안되는데, 그래도 재밌어요. 테니스 시작하길 잘한 것 같아요” 수요일 밤과 토요일 오전은 테니스 동호회에 온다. 테니스는 오십 년 전 홍콩에서 살 때 열심히 했던 후로 오랜만이다. 동호회 사람들과 맞춰주며 쉬엄쉬엄 적당히 쳤다. 수아라는 신입 회원은 나를 ‘프로님’이라고 부르며 틈날 때마다 자세를 봐달라고 했다. “저도 지석 프로님처럼 백핸드 잘하고 싶어요. 언제부터 치셨어요?” “에이 프로라뇨. 그냥 친지 오래 된 것 뿐이예요” “얼마나요? 초등학생 정도부터요?” ..